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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일상의 생각들

아관파천 고종의 길. 구 러시아대사관, 명성황후

by 행복을 꿈꾸는 오로라 2020. 1. 19.

날이 청명하여 우연히 정동빌딩의 골목길을 걷게되다가 발이 멈춘 곳이 구 러시아대사관 자리였다. 현재는 아무것도 없고 그 당시의 탑만 덩그런히 있고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당시 그 사건을 되집게 본다.

고종(1852~1919) 조선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1대 황제. 비운의 왕이자 망국의 황제. 청나라와 러시아. 일본등 열강의 세력 다툼에 국운을 맡기고 일본에 국권마져 잃고 근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집권 내내 길지자 행보를 보인 시대의 무능한 왕인지 불운의 왕인지 판단이 잘 서지는 않지만 최근의 우리나라 흐름을 보고 있노라며 웬지 슬퍼지며 고종시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가 재위한 1863년부터 1907년까지 44년은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중요한 시기였지만 감지를 하지 못했으며 첫 10년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그 이후에는 부인 명성황후와 외척인 민씨 일가가 정국을 주도했기에 국제 정세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그가 세운 대한 제국은 일본식민지가 되었으며 44년이나 왕위에 있었지만 진전한 왕이었던적이 없었던 셈이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는 항상 주연이며 조연으로 고종이 나오니 그 시대의 정황을 드라마만 보더라도 익히 가늠할 수 있다.

고종이 12살에 왕위에 오르고 22살이 되어서 정권을 장악하려했으나 왕권은 이미 명성왕후에게 넘어갔으며 그동안 흥선대원군의 세력에 맞서려구 외척의 힘을 키워왔기에 쉽지가 않았다.


조선을 침탈하려던 일본입장에선 명성황후가 눈엣가시였을 수 밖에 없었으며 결국 일본은 경복궁 안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1895년)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켰다


그 이듬해 아관파천(1896)은 고종이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에서 375일간 머문 사건을 말한다.

 

고종이 1년정도 머무렀던 구. 러시아대사관터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뒤 조선을 내정간섭 본격화 시작했으며 고종에게 개혁을 요구해서 고종은 러시아를 등에 업고 일본을 몰아낼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고종은 일본이 자신도 해침을 당할까 두려워서 궁궐을 버리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하게 된 사건이다. 그러나 러시아도 원조대신에 각종 채굴권이나 이권등을 요구해서 결국 고종은 1897년(공종34년)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하고 그 때부터 비로서 덕수궁은 궁궐다운 장대한 전각들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고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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